연애 중 채식을 시작한 나, 작은 선택이 낯선 긴장을 만들다
처음부터 나는 채식을 고집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고기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맥주 한 잔 나누는 시간도 즐겼다. 연애를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고, 우리 둘은 식사 취향도 잘 맞는 편이었다. 피자, 파스타, 고기구이, 닭발, 분식까지. 늘 식사 시간은 데이트의 중심이었고, 그렇게 한 끼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애정도 쌓여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지속적인 위장 트러블과 속쓰림,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피로감. 병원에선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식습관 개선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일단 고기를 줄여보자’는 단순한 선택에서 시작해, 조금씩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나 혼자 실험처럼 시작한 일이었고, 연인에게도 별 말 없이 조용히 식단을 바꿨다. 하지만 생각보다 변화는 빨랐다. ‘오늘은 고기 말고 샐러드 먹고 싶어’, ‘치즈는 좀 부담스러워’ 같은 말을 하게 되면서, 식사 선택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연인은 처음엔 “그래? 그럼 다른 데 가자”고 자연스럽게 반응했지만, 이 작은 차이가 반복될수록 미묘한 거리감이 생겨났다. 데이트는 여전히 즐거웠지만, 뭔가 피곤해졌다. “이제 뭐 먹을지 정하기가 어렵다”,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거 아니야?”, “네가 먹고 싶은 데는 난 솔직히 별로야” 같은 말들이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고, 나는 혼자 고민하게 되었다. ‘이건 단지 식사 취향 차이일까, 아니면 우리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 걸까?’
채식 하나로 ‘라이프스타일의 간극’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내가 불편한 사람이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아꼈고, 애정도 있었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늘 양보와 타협이 필요했다. 한 명은 채식 식당을 검색했고, 다른 한 명은 “솔직히 좀 물려”라고 말했다. 이 작은 대화 속에 우리는 점점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채식은 단지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단순히 음식을 고르면서도, 식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 선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과의 식사는 점점 ‘무언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나만 이렇게 먹을게, 넌 그대로 해도 돼”라고 늘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이의 벽’이 자꾸 생겼다. 특히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더 힘들었다. 그는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를 예약했고, 나는 메뉴에 채식 옵션이 없다는 걸 알고도 웃으며 따라갔다. 식사 자리에서 나는 거의 접시만 바라보다 나왔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히 짜증이 났다. 상대는 “왜 말을 안 했냐”고 했고, 나는 “말해도 바뀌는 게 없잖아”라고 답했다. 그 순간 우리는 식사 하나를 두고도 서로를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방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이건 고기냐 채소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식탁 위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가끔은 ‘같이 먹는다는 게 이렇게 복잡한 일이었나’ 싶었고, 식사를 함께할 수 없는 사람과, 감정을 오래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연인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채식을 선택하면서 변화된 건 단지 식단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였고, 그 차이가 결국 우리의 대화 주제, 생활 패턴, 데이트 코스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식사가 아닌, ‘삶의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거였다는 걸.
채식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관계를 흔들었다
채식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몸의 반응에 집중했고, 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 진짜로 고민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먹던 고기가 어느 날은 불편하게 느껴졌고, 가공식품보다 제철 채소를 고르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 변화는 나에게 큰 자존감을 줬다. 음식을 선택하는 방식 하나에도 철학이 생겼고, ‘나는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자존감이 관계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성향'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저 건강하고 편안하고 싶었을 뿐인데, 상대방은 ‘너만 중요한 거냐’는 뉘앙스를 느꼈을 수도 있다. 결국, 서로가 맞춰야 했던 건 메뉴가 아니라 ‘기준과 태도’였다. 채식은 내게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매일 나를 돌아보는 루틴이 되었다. 식단을 스스로 계획하고, 직접 장을 보고, 천천히 요리하면서 나는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해주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속도, 균형, 정직함, 그리고 의도)이 분명해졌고, 그것이 단지 ‘연애를 잘하려는 노력’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법,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습, 그 모든 것이 채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게, 나에겐 꽤 큰 발견이었다. 채식은 내게 건강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정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연애라는 건, 두 사람이 서로의 우선순위를 조율해가는 과정이고, 나는 그 조율에서 때로는 고집처럼 보였고, 때로는 거리감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식사는 늘 관계의 축이었다.한 끼를 어떻게 먹느냐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공유하고 이해하느냐가 더 중요했음을 나는 늦게서야 깨달았다.
채식보다 더 어려운 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와 헤어졌다. 채식이 이별의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나를 위해 한 선택’이 관계를 흔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다음 관계에서는 서로의 삶의 속도와 우선순위를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깟 식단 때문에 연애가 흔들려?” 하지만 나에게는 단지 식단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선택하는 첫 번째 방식이었고, 그 선택을 어떻게 존중받고, 또 존중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인간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채식을 하면서 나는 내 삶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와의 이별을 통해 ‘다름을 이해하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그렇기에 지금은 혼자 식사하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의미 있게 느껴진다. 조용한 식탁에서,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익히고 있다. 혹시 당신도 지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다른 식습관’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단순한 기호 차이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를 묻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식탁 위의 차이가 곧 마음의 간극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더 솔직하게, 더 따뜻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식사 하나로 사랑이 흔들릴 수도 있고, 식사 하나로 사랑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그건 메뉴보다 더 중요한, 대화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연애든 가족이든 관계 안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선택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자연스러운 권리다. 모든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걷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관계가 당신의 방식을 바로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당신이 스스로의 기준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을 상대에게 진심을 담아 설명할 용기를 가졌는가다. 그 용기만 있다면, 언젠가는 더 깊이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직도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나의 식습관을 숨기고, 입맛을 포기하고,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조금씩 꺼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식탁은 곧 당신의 삶이고, 당신이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가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그 선택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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