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채식을 하며 달걀도 버터도 뺐더니, 진짜 비건이 되기까지의 여정

llyn1815 2025. 7. 8. 18:20

채식하며 달걀, 버터까지 빼기

“나는 채식주의자였지만, 비건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채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고기 대신 버섯을 구웠고, 샐러드를 고를 땐 닭가슴살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라면을 끓일 때도 스프를 절반만 넣었고, 친구들과 파스타를 먹을 때면 크림 소스 대신 토마토 소스를 선택했다. 그런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너 거의 비건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나 역시 스스로를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채식 관련 커뮤니티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내 식탁을 되돌아보게 됐다. “달걀은 자주 먹고, 크래커에도 버터가 들어가 있고, 우유 넣은 커피도 매일 마시지 않나?” 그 순간 나는 알게 됐다. 나는 ‘채식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비건’은 아니었다. 그래서 질문이 생겼다. ‘진짜 비건은 어떤 식단을 먹을까?’, ‘달걀과 버터, 우유를 빼고 나는 어떤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30일간의 진짜 비건 도전기다. 달걀도, 버터도, 우유도 없이 정말 100% 식물성 식단으로 살아본 내 솔직한 경험. 그 속엔 단순한 식습관 변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면하고 선택을 되묻는 여정이 담겨 있다.

 

채식주의자가 식탁에서 달걀과 버터를 없앤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비건을 선언한 첫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봤다. 거기엔 달걀 한 판, 버터 반 블록, 슬라이스 치즈가 있었다. 늘 식사의 기본이자 '건강한 단백질'이라 믿고 먹던 재료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이 재료들은 식물성의 경계를 넘는 '선'이 되어버렸다. 먼저 달걀. 매일 아침 삶은 달걀 두 알을 먹던 나는 그 빈자리를 두유 오트밀, 병아리콩 샐러드로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포만감’이 부족했다. 달걀은 작고 익숙하지만, 포만감과 단백질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강력한 재료였다. 그걸 뺐다는 건 단지 영양소가 아니라 하루의 안정감을 바꾸는 일이었다. 버터는 더 복잡했다. 식빵에 바르던 발라먹는 버터, 요리할 때 풍미를 더해주던 버터, 베이킹의 핵심 재료인 버터. 그 버터를 뺀다는 건 식사의 풍미를 ‘덜 맛있게’ 바꾼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코코넛 오일, 올리브 오일, 비건 마가린 등을 시도해봤지만 ‘버터의 깊은 향’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했다. 결국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비건 식사는 단순히 재료를 ‘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합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오트밀에 바나나와 땅콩버터를 넣어 아침을 만들었고, 두부를 으깬 후 강황과 후추, 아몬드밀크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버터 없이도 맛있는 구운 감자, 달걀 없이도 부드러운 비건 팬케이크를 찾기 위해 매일 인터넷을 뒤지고, 기록하고, 다시 조리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나는 재료 뒷면의 원재료명을 꼼꼼히 읽는 습관이 생겼다. ‘우유’, ‘유청’, ‘계란’, ‘버터’라는 단어는 마트에서 즉시 ‘장바구니 OUT’의 기준이 됐다. 이는 단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게 아니라, 소비자에서 선택자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달걀과 버터를 뺀 식단은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나를 괴롭히기보단, 내 식탁을 더 의식적으로 만들었고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인지 되묻는 힘이 되어주었다.

 

채식과 비건, 또 다른 주변 반응, 감정 기복, 요리의 고통

채식인으로서 비건 도전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나는 예상보다 빠르게 감정 기복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식사에서 얻던 만족감이 줄어들었고, “아무거나 한 입만 먹고 싶다”는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왔다. 달걀프라이 하나, 크로와상 하나, 누가 보면 별거 아닌데, 그 하나를 먹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는 왜 이걸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달걀도 안 먹는 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이제는 그냥 먹는 척이라도 해.”,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이건 별로 안 들어간 거야.” 그 말들이 늘 악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점점 식탁에서 소외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기 안 먹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이제는 계란도 안 돼?’ 그 물음은 마치 내가 괴짜가 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런 반응 속에서도 나는 작은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친한 친구는 “그럼 널 위해 오늘은 비건 파스타 해줄게”라고 말했고, 회사 동료는 “이건 버터 안 들어갔는데 같이 먹자”고 챙겨줬다. 나의 변화가 주변을 불편하게도 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대화가 생기고, 이해가 싹트기 시작했다. 요리는 여전히 도전이었다. 달걀 없이 반죽은 늘 질거나 부서졌고, 버터 없이 구운 식빵은 풍미가 부족했고, 식물성 우유는 늘 내 기준엔 2%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조리법을 조금씩 바꾸며식물성 식재료의 조합력과 깊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 시기부터 매끼니가 ‘무의식적인 소비’가 아니라 ‘의식적인 창조’로 바뀌었다. 아무렇게나 먹던 식사가 이젠 내가 책임지고 설계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가끔 실패해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 실패조차도 “내가 진짜 비건으로 살아보려 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채식인으로서 비건 도전, 완벽하진 않지만

비건 식단을 30일 실천하면서 느낀 가장 실질적인 변화는 식사 자체가 훨씬 계획적이고 구조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편의성 위주로 식사를 결정했다. 배고프면 간편식을 돌리고, 출근 전엔 습관처럼 토스트를 굽고, 야식으로 치즈나 에그타르트를 먹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비건 식단을 시작하면서, 매일의 식사를 사전에 구성하고 준비하게 됐다.

나는 식단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운영했다.

아침: 귀리죽 + 과일, 두유 스무디, 통밀빵 + 땅콩버터

점심: 도시락 (현미밥 + 채소볶음 + 렌틸콩·두부 반찬 구성)

저녁: 오일 프리 채소찜 + 고구마 + 된장국 or 채소볶음국수

 

특히 단백질 확보를 위해 병아리콩, 두부, 렌틸콩, 두유, 퀴노아 같은 재료를 의식적으로 매일 한 가지 이상 섭취했다. 처음엔 부족한 느낌이 있었지만, 2주가 지나자 몸이 익숙해졌고, 포만감은 유지되면서도 소화는 훨씬 가벼워졌다.

 

조리 방법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팬에 버터를 쓰고, 계란으로 마무리했지만 지금은 물이나 식물성 오일로 볶고, 고소함이 필요할 땐 들기름이나 타히니(참깨 페이스트)를 활용했다. 버터 없이 요리하는 것이 처음엔 심심했지만, 그 덕분에 양념 조합과 향신료 사용이 훨씬 다양해졌다.

 

비용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초기엔 오히려 식비가 늘었다. 코코넛오일, 식물성 마요네즈, 비건 인증 가공식품 같은 제품들이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3주 차부터는 단순한 자연식 중심 식단으로 안정되면서 월평균 외식 비용은 약 40% 감소했고, 장보기도 주 1회로 고정되며 전체적인 소비 루틴이 건강하게 정리되었다.

 

외식 시에는 여전히 메뉴 선택이 어렵긴 하지만,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정해서 실천했다. 비건 또는 채식 선택지가 있는 식당 사전 조사, 사이드 메뉴 조합으로 한 끼 구성 (감자튀김 + 샐러드 + 현미밥 등), 달걀·버터 포함 여부를 직원에게 정중하게 확인, 외식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락토 오보(Lacto-Ovo)'로 유연하게 조정(*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우유·계란은 섭취하되 고기나 어류는 먹지 않는다.). 이런 기준을 세우자 스트레스가 줄고 지속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체적 변화도 분명했다. 식후 더부룩함이 사라졌고, 복부 팽만과 트림이 현저히 줄었으며, 아침 기상 후 공복 배변이 자연스러워졌다. 피부 톤도 전보다 한층 맑아졌고, 무기력했던 오후 시간대에도 집중력과 컨디션 유지가 용이해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내 식습관을 바라보는 자기 인식의 수준이었다. 그전엔 그냥 배고프면 먹고, 맛있으면 또 먹는 식이었지만 지금은 ‘이 음식이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관찰하고 선택하게 되었다. 그건 단지 비건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삶을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감각이다. 물론 나는 아직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외식 자리나 여행 중에는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타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유연함조차 ‘의식적인 선택’이라는 기준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30일의 도전은 ‘절제’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이해하고 나를 주도하는 경험의 기록이었다. 달걀 없이도, 버터 없이도 나는 먹고, 움직이고, 웃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고 그 안에서 내가 원래 원했던 나다운 식사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