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비건 화장품과 채식 철학의 연결고리

llyn1815 2025. 7. 19. 08:30

사람들이 비건 화장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순간은 보통 음식에서 채식을 시작한 이후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식탁 위의 변화가 내 얼굴 위로 확장되면 ‘내 몸에 바르는 것에도 정직하고 친환경적인 원리를 적용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구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것을 넘어선다. 1940년대에는 윤리적 이유로 '비건'이라는 단어가 정의된 이후 채식주의는 음식뿐 아니라 삶 전체의 철학으로 확장되었으며, 최근에는 화장품, 옷, 세제 등 소비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즉, ‘채식’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몸에 ‘바르는 것, 쓰는 것’까지 영향을 미치는 생활 방식을 뜻한다. 비건 화장품은 동물성 원료나 동물실험을 완전히 배제하고, 되도록 재생 가능한 식물성 성분으로 포뮬러를 구성하며, 용기 역시 재활용 가능하거나 생분해되는 것으로 선택한다. 이러한 흐름은 ‘아름다움에도 윤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반영하며, 나아가 지구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실천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건 화장품과 채식 철학의 연결

 

비건 화장품 성분과 채식에 관한 과학적 접근

화장품에 사용되는 대표적 동물성 원료는 lanolin(라놀린), beeswax(벌납), collagen(콜라겐) 등이 있다. 이러한 성분들은 피부에 효과적이지만 윤리적 소비 관점에서 문제시되어 왔다. 비건 화장품은 이를 식물성 대체물질로 바꾸는데, 시어버터, 호호바 오일, 올리브 오일 같은 식물성 지질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발효 기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비건 콜라겐정밀 발효를 통한 스쿠알란 같은 고기능성 성분들도 나오고 있어, 과학적 성능 면에서도 기존 동물성 제품과 견줄 만하다. 또한 비건 화장품은 화학적 합성물이 아닌 식물 유래 항산화제, 비타민, 식물 유래 펩티드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저자극·고효능 포뮬러를 지향한다. 이는 단순히 윤리를 넘어 피부 건강을 위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접근이다. 일부 제품은 라벨링 인증도 철저하여, The Vegan Society, Leaping Bunny, PETA 인증 Cruelty-Free 마크를 통해 소비자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건(채식) 화장품의 지속 가능성과 환경 영향

비건(채식) 화장품은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식물성 원료는 동물성 대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수자원 사용량이 현저히 낮으며,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존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건 화장품에 사용되는 스쿠알란 성분은 과거 상어 간유에서 추출되던 방식과 달리, 최근에는 올리브 부산물이나 사탕수수 발효 과정으로도 안정적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과정은 기존 동물 유래 방식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90%까지 줄일 수 있다는 LCA(전 과정 환경영향평가)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실제로 영국 환경식품농무부(DEFRA)와 EU 환경청 보고서에 따르면, 화장품 산업에서 사용하는 동물성 원료의 환경영향은 단위당 CO₂eq 배출량과 수질오염 지표 모두에서 식물성 원료보다 평균 4~7배 높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유럽연합(EU)에서는 2013년부터 화장품 제조 및 수입 전 과정에서의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였으며, 한국 역시 2018년부터 비임상 대체시험법을 중심으로 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뷰티 브랜드들은 단순히 동물성 성분을 배제하는 차원을 넘어, 원재료의 생산지 추적, 재생 가능한 자원 활용, 폐기물 최소화를 위한 패키징 혁신 등 전방위적인 환경 개선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채식 화장품은 '제로 웨이스트'와 '클린 뷰티' 흐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지속 가능한 원료 공급망(Sustainable Supply Chain)을 구축하거나, 재생 가능한 바이오 기반 포장재(bio-based packaging)를 사용하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의 세포라(Sephora)는 자사 ‘Clean at Sephora’ 라벨에 비건 여부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 수자원 절감, 재활용 가능성까지 평가 항목에 포함시켜, 소비자의 선택 기준을 다각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소비 트렌드의 변화라기보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뷰티 산업의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채식 화장품은 더이상 단일 제품 라인의 윤리적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원료의 재배 방식, 지역 공동체와의 상생, 공급망의 탄소 발자국 감소, 포장 폐기물 처리까지 한 화장품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전 과정에서 환경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총체적 접근 방식이 채택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 신뢰를 높일 뿐 아니라, ESG 경영 강화와 지속 가능한 기업 이미지 구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뷰티 브랜드의 마케팅 수단을 넘어서, 이제는 기업 가치와 생존을 가르는 주요 지표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비건 퍼퓸, 향기까지도 채식 윤리를 입히다

최근에는 채식 철학이 화장품을 넘어 향수로 확장되고 있다. 비건 퍼퓸은 단순히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원료 자체도 동물성 성분을 철저히 배제하며, 대부분 자연 유래 혹은 식물성 원료만을 사용한다. 전통 향수에는 사향(머스크), 시벳, 앰버그리스(향고래 분비물) 등 동물성 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오랜 시간 고급 향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물 학대 논란이 계속되자,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이 비건 향수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이러한 수요에 발맞춰 글로벌 브랜드뿐만 아니라 국내 인디 브랜드들도 비건 인증을 받은 향수를 출시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해외 브랜드로는 '르라보(Le Labo)', '바이레도(Byredo)', '플로럴 스트리트(Floral Street)' 등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논픽션', '젠틀퍼퓸' 등이 비건 향수 라인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이 제품들은 IFRA(국제향료협회)의 안전기준을 준수함은 물론, 향기 그 자체의 개성과 철학까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단지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감각을 전달하는지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또한 향의 지속력이나 풍부함 면에서 비건 향수가 다소 부족하다고 말하는 소비자도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오히려 고정관념에 가까운 시각일 수 있다. 현재는 식물성 원료만으로도 고급스러운 향조(향의 구조)를 구현해내는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 있고, 일부 브랜드는 오히려 기존 향수보다 독창적이고 부드러운 향을 구현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또한 포장재까지도 비건 철학에 부합하도록 친환경 재질로 구성하는 등 전반적인 가치 소비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향수는 곧 정체성’이라는 인식과도 잘 어우러진다.

비건 향수는 더 이상 마이너한 소비자들만 선택하는 틈새 시장이 아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 소비 트렌드는 ‘향기마저 윤리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해답으로 직접 구매와 사용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향기를 소비한다는 건 누군가의 감각과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향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존재하고 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책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채식과 비건의 철학은 더는 식탁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작은 향수 한 방울도, 더 나은 세상과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조금씩 비건 화장품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독자들을 위해 제품을 고를 때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전성분 확인을 철저히 할 것이다. ‘비건’이라는 이름만 있어도 lanolin, beeswax, glycerin 등의 동물 유래 성분이 포함될 수 있고, 일부 제품은 동물실험은 하지 않지만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The Vegan Society, Cruelty‑Free International, PETA 공식 인증 마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둘째, 성분뿐 아니라 제품의 효능과 안전성도 중요하다. 자연 유래 성분이 많다고 해서 모두 저자극이거나 효과적이지는 않으므로, 비건 성분의 효과를 임상적으로 입증받았는지, 발효나 정제 공정이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포장재와 재활용 체계를 고려한다. 유리 용기,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리필 제도 등을 통해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이 포함된 브랜드를 선택하면 채식 철학을 삶 속에서 더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천은 완벽함보다 지속성이다. 한 번에 모든 스킨케어를 비건으로 바꾸기보다, 립밤 하나, 세럼 하나부터 시작해보는 단계적 전환이 오히려 부담 없고 실천하기 쉽다. 작은 제품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윤리적 소비와 환경 보호에 동참하고 있음에 스스로에게도 자부심이 되는 변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