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 나는 채식이라는 단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 유제품을 끊는다는 것, 그리고 비건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엄격함’이 오히려 나를 더 망설이게 만들었다. 주변에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그들은너무 자연스럽게 식물성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생활에 쉽게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음식에 욕심이 많고, 빵이나 치즈도 좋아하는데 가능할까?”, “채식을 시작하면 금방 지치지 않을까?”, “직장 생활하면서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완벽하게 하지 말자. 대신 꾸준하게 해보자. 이 글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내가 한 달 동안 어떻게 채식에 적응했고, 어떤 실수는 피했고, 어떤 노하우 덕분에 실패 없이 이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었는지를 담은 기록이다. 채식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서 조금은 현실적이고 적용 가능한 방법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채식 시작, 끊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부터
채식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끊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었다. 완전히 끊겠다는 결심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키우고 작은 실수에도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 일주일은 아침 식사만 채식으로 바꿨다. 기존에는 토스트에 계란후라이, 버터를 바르곤 했지만 이제는 통밀식빵에 땅콩버터, 오트밀에 두유와 바나나를 넣은 식사로 바꿨다. 의외로 포만감이 좋았고, 속도 편했다. 아침 한 끼만 바꿔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다음엔 점심 도시락을 바꿨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고기 없는 메뉴를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도시락을 직접 싸가면서 메뉴 조절이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현미밥, 두부조림, 브로콜리, 고구마 정도로 단순하게 시작했다. 식은 두부의 맛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가져가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완벽하게 비건 재료만 쓰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된장이나 김치에 젓갈이 들어가 있어도 “이건 당장은 괜찮아”라고 내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 오히려 그런 유연함 덕분에 스트레스를 줄이고 식단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실천한 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미리 정리해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외식을 할 때 비빔밥(고기 빼고), 샤브샤브(채소+두부 위주), 비건 브런치 카페 같이 대체 가능한 메뉴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놓으니 ‘뭘 먹지?’라는 고민이 줄고 실패 확률도 낮아졌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못 먹는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였다.
채식 적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한 생활 루틴 세팅법
채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중점을 둔 건 생활 루틴이었다. 특히 장보기 – 식재료 손질 – 도시락 준비 – 외식 대응 이 4가지가 내가 실패 없이 채식에 적응하는 데 핵심이었다.
장보기: 한 주에 한 번, 채소 중심으로 미리 계획
나는 매주 일요일 아침, 장보기를 고정 루틴으로 만들었다. 마트에 가기 전, 냉장고를 열어 남은 식재료를 체크했고 그 주에 만들 식단을 미리 계획해 장바구니를 짰다. 주요 재료는
단백질: 두부, 병아리콩, 렌틸콩, 유부
탄수화물: 고구마, 현미밥, 귀리, 통밀빵
지방: 아보카도, 견과류, 올리브오일
채소: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버섯, 오이
양념: 간장, 된장, 고추장(비건), 바질, 마늘가루 등
이렇게 구성하니 불필요한 소비 없이 실속 있는 식단 구성이 가능했다.
손질 & 밀프렙: 실패 확률을 줄이는 사전 준비
장 본 채소들은 가능한 한 그날 다듬어놓고 소분했다. 브로콜리 데쳐서 3등분. 당근채 볶아 밀폐 보관. 두부는 굽거나 양념 조림. 병아리콩은 삶아서 냉동. 이런 준비 덕분에 아침에 도시락 싸는 시간이 10분으로 줄었고, 귀찮아서 대충 때우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도시락 패턴 만들기: 고민 없는 반복 구성
나는 주 5일 중 3일은 도시락을 쌌고, 2일은 외식했다. 도시락은 이렇게 구성했다.
탄수화물: 현미밥 / 고구마 / 퀴노아
단백질: 두부구이 / 렌틸커리 / 병아리콩 샐러드
채소: 브로콜리 / 김무침 / 나물류
매번 고민하지 않고 ‘기본형 3구성’을 반복하니 식사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었고 영양 균형도 지킬 수 있었다.
외식: 기준을 유연하게, 태도는 당당하게
외식은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모임에서 나 혼자만 식단이 다르다는 게 눈치 보였고, “오늘 하루는 그냥 먹어”라는 말도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외식 기준을 엄격하게 정하기보다는,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들어,
된장찌개 먹을 땐 멸치 육수라도 그냥 먹되, 고기는 걷어낸다.
김밥은 계란 빼달라고 요청하고, 먹기 불편한 재료는 그대로 둔다.
베이커리에선 우유·버터 포함 여부 확인 후, 가끔은 허용
이런 유연함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채식 루틴을 유지하는 데 더 큰 힘이 됐다. 완벽하게 지키려다 포기하는 것보다는 지속 가능한 범위 안에서 타협하고 조절하는 태도가 더 중요했다.
야식·폭식 충동 대처법: 감정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 구분하기
채식 실천 중 가장 자주 흔들렸던 순간은 바로 밤 9시 이후의 야식 충동이었다. 특히 하루 종일 도시락으로 식사를 잘하고 돌아왔는데, 늦은 저녁이 되면 갑자기 바삭한 과자나 배달 음식이 생각나곤 했다. 이때 내가 사용한 방법은 ‘진짜 배고픔인지, 감정 배고픔인지’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정말 위가 고픈 건지? 아니면 스트레스나 피로 때문인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대부분은 ‘그냥 뭔가 먹고 싶을 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 땐 대안을 준비해뒀다. 미리 구운 고구마나 견과류 한 줌, 두유에 말아 먹는 오트밀 1/2공기, 바나나 1개 같은 가벼운 식물성 간식으로 입을 달래고 뜨거운 물이나 허브티 한 잔을 마셨다. 물리적으로 배가 찼을 때의 만족감과는 다른 감정적으로 ‘먹었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게 중요했다.
외식 중 폭식 욕구를 누르기 위한 나만의 ‘리듬 유지법’
외식 자리는 유혹이 많다. 메뉴를 정할 수 없고, 다양한 음식이 나올 때 과식하거나 “오늘 하루는 그냥 포기하자”는 생각이 쉽게 든다. 그때는 이렇게 정리했다. 앞접시를 활용해 내가 먹을 분량을 먼저 정해두기, 빵이나 면보다는 채소나 밥 위주로 담기, 속도를 천천히 유지하고 물을 자주 마시기, 먹으면서 포만감이 오는 시점을 신경 쓰기 이 4가지만 실천해도 '폭식했다'는 자책감 없이 외식을 마칠 수 있었고, 식사 후에도 몸이 훨씬 편안했다. 무엇보다 “이번 한 끼가 내 루틴을 무너뜨리진 않는다”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했다. 완벽하게 지키는 것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채식, 시작은 어렵지만 ‘패턴’이 생기면 버틸 수 있다
한 달 동안 채식을 실천하면서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야근 후 도시락을 못 챙긴 날도 있었고, 외식 자리에서 유제품이 들어간 메뉴를 먹고 “이건 괜찮을까?” 고민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흔들림보다 다시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오는 힘을 키웠다는 사실이었다. 채식을 하면서 처음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고기를 끊는 문제가 아니다. 야식이 당길 때,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일 때, 혹은 매번 식사를 준비하기 귀찮을 때처럼 정신적 피로와 생활 속 불편함이 복합적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리듬을 만들었다.식사는 복잡하게 하지 않고, 탄수화물 + 단백질 + 채소의 세 가지 원칙만 유지했고, 도시락은 반복 가능한 구성으로 고민을 줄였다. 외식은 완벽하게 제한하지 않고, 부담 없는 선에서 유연하게 조절했다. 무엇보다 ‘이번 한 끼가 내 루틴을 망치진 않는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야식이 먹고 싶을 때면 고구마나 오트밀, 견과류 같은 간식으로 대체했고, ‘감정적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을 구분하려 애썼다. 식욕보다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날에는 음식보다 휴식이나 산책, 따뜻한 차 한 잔이 더 효과적일 때도 많았다.
이런 루틴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식사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내 몸과 감정을 조율하는 도구가 되었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나를 무너뜨리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만큼 나를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식사를 고를 때 성분표를 읽고, 재료를 신중히 고르며, “이게 정말 나한테 맞는 선택일까?”를 스스로 묻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채식은 단지 식사방식이 아니라 삶을 더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혹시 지금 채식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나는 실패할 것 같아’, ‘지금 너무 바빠서 못 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든다면, 말해주고 싶다. 하루 한 끼라도 괜찮고, 일주일에 두 번만 해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루틴과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조금씩 채식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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