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채식이 버거웠던 이유 – 나는 왜 2번 실패했을까?

llyn1815 2025. 7. 6. 17:42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해보자”는 말이 쉽게 들렸던 이유

채식을 처음 결심했던 건 건강 때문이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더부룩하고, 야식 후 불면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더 좋은 음식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때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바로 ‘채식’이었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수많은 정보들이 나왔다. "채식하면 장이 편안해진다", "피부가 맑아지고 체중도 줄어든다", "식물성 식단이 뇌에도 좋다". 확실히, 설득력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나도 한 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첫 번째 채식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도전은 2주도 못 가 무너졌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 역시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때마다 나는 좌절했고,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채식은 좋은 음식, 건강한 선택이라고 믿고 시작했는데 왜 나는 두 번이나 실패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나는 채식을 어렵게 만들었던 현실적인 이유들을 알게 되었고, 그 경험을 돌아보며 이제는 채식이 부담스럽지 않게 된 지금, 내가 어떻게 다시 균형을 찾았는지까지 담고 싶다. 혹시 지금 채식을 고민하거나, 시도했다가 금방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아마 이 글에서 “나도 그랬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라 생각한다.

 

첫 번째 실패: ‘이 정도면 채식이지’라는 착각

첫 번째 채식 도전은 솔직히 허술했다. 나는 그때, ‘고기만 안 먹으면 채식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식단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삼겹살 대신 버섯을 구웠고, 햄버거 대신 에그샌드위치를 먹었다. 샐러드에 닭가슴살을 뺐고, 밥에는 계란후라이를 얹었다. 문제는 그게 완전한 채식은 아니었고, 영양 밸런스도 엉망이었다는 점이다. 계란, 치즈, 우유 같은 동물성 식재료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단백질은 부족했고,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아졌다. 그 결과, 포만감은 없고, 식후 피로는 줄지 않았고, 식욕은 점점 더 커졌고, 결국 야식이나 군것질로 채우게 됐다. 그때 나는 "채식은 나랑 안 맞아"라고 단정해버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때 제대로 된 채식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고기를 뺀 식사’를 무작정 반복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채식 식단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렌틸콩, 병아리콩, 퀴노아, 템페 같은 식물성 단백질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저 두부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또 하나 큰 문제는 요리 스킬의 부족과 식사 준비의 귀찮음이었다. 요리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한정된 재료로 똑같은 메뉴만 반복했고, 질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렇게 식단은 지루해졌고, 맛없고 귀찮고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가 반복되니 의지는 금세 무너졌고, 그 결과 나는 2주 만에 다시 고기를 찾게 되었다. 첫 번째 실패는 준비 부족과 정보 부족, 요리 루틴 부재에서 비롯된 예상된 무너짐이었다.

 

두 번째 실패: 채식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버거워졌다

첫 번째 실패 후 나는 반성을 했다. “이제는 진짜 제대로 해보자.” 그래서 두 번째 도전에서는 완전 채식, 즉 비건 식단을 실천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육류, 해산물, 유제품, 달걀, 벌꿀까지 식단에서 전부 제거했다. 마트에서 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했고, 소스 하나, 스낵 하나까지 동물성이 포함된 건 철저히 피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인 도전이 되고 말았다. 비건 식품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고, 비싸기까지 했다. 조리할 수 있는 재료가 제한되다 보니 매일 요리 시간이 길어졌고, 장보기도 어렵고 복잡했다. 외식은 더 문제였다. 회사 점심, 친구와의 약속, 가족 식사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었다. 식당에서 따로 요청을 해야 하거나 내가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먹기도 했는데, 그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심리적인 위축감과 피로감이었다. 남들이 “한 입만 먹어”라며 건넨 음식조차 거절해야 했고, "넌 너무 예민해"라는 말을 종종 들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회사 회식에서 나온 김치찌개를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마음으로 먹게 되었고, 그 순간 스스로를 배신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점점 실망하게 되었고, ‘나는 왜 이렇게 못하나’는 자책감이 쌓여갔다. 결국 두 번째 채식 도전은 엄격함과 피로,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린 시도가 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도전은 의지보다 완벽함에 집착한 결과였고 그 완벽함이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망가뜨린 이유였다.

 

채식에 실패한 이유

 

그러나 이 두 번째 실패에는 또 다른, 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건 바로 ‘지친 상태에서 시작한 채식’이었다. 당시 나는 반복되는 야근과 일상 스트레스로 지쳐 있었다. 출근 준비도 벅찬 아침, 퇴근 후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일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하루 세 끼를 직접 요리해먹고 성분까지 따져가며 식사하는 건 심리적 에너지로도, 물리적 시간으로도 너무 벅찼다. 결국 나는 저녁마다 배달 앱을 켜기 시작했다. “오늘만 치팅”, “이건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떡볶이, 피자, 마라탕 같은 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음식들은 짜고 맵고 달았고, 잠시 위로는 됐지만, 몸은 더 무거워졌고 다음 날이면 또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피로->배달–>폭식–>후회–>피로–>야식의 사이클이 무의식중에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악순환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채식은 나랑 안 맞아”가 아니라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 같아”라는 무기력한 감정에 빠졌다. 실패의 원인은 채식이 아니었다. 내가 지쳐 있었고, 쉬운 방법을 몰랐고, 구조를 못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채식이라고 해서 실패와 성공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두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나는 진짜 중요한 걸 깨달았다. 채식은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하지만 내 식단은 대부분 식물성 중심이고, 주 5일 이상은 완전 채식에 가깝게 생활한다. 그건 완벽을 목표로 한 결과가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무리 없이 실천하자’는 방향 설정의 결과다. 식사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내 몸의 반응을 살피고, 기분과 에너지를 조절하는 방법이 되었고, 외식 자리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도시락은 주 3회만 싸고 나머지는 유연하게 대응. 외식에서 계란이나 소량 유제품은 허용하되, 고기는 피함. 식사 실패한 날엔 죄책감 대신 다시 돌아올 루틴을 마련함. 이렇게 기준을 조정하니 채식은 더 이상 ‘버거운 실천’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습관이 되었다. 혹시 지금 채식을 시도했다가 자꾸 실패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실패한 게 아니라, 당신의 시스템이 아직 당신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다.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지키겠다는 압박도 잠시 내려놓고 하루 한 끼라도 식물성 식사를 해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된다. 나는 그렇게 다시 시작했고, 이번에는 오래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방식이 나에게 맞는 ‘채식의 답’이라는 걸 매일 체감 중이다.

 

그래서 나는 무리한 계획 대신 ‘지칠 때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를 먼저 만들었다.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식사 구성: 오트밀 + 두유 + 견과류, 통밀빵 + 아보카도

재료 없이도 가능한 외식 대안: 고기 뺀 비빔밥, 분식집 김밥(계란만 제거)

냉장고에 두면 무조건 먹게 되는 간식 대체품: 삶은 고구마, 구운 두부, 바나나

또 중요한 건, 실패한 날에도 스스로를 혼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습관’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무너졌어”가 아니라 “내일은 다시 할 수 있어”, 하루 3끼 중 1끼만 성공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힘들 땐 채식 자체보다 자극적인 음식 피하기를 먼저 실천하기, 이런 유연한 기준이 생기자, 나는 점점 채식을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살아가는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만약 당신도 오늘, 냉장고 앞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막막했다면 그건 채식의 시작점에 가장 가까이 와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 한 끼의 선택부터 가볍게 시작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