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일주일만 채식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채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본 날, 나는 내 식습관을 곱씹어보게 됐다. 늘 고기 위주로 먹어왔고, 특히 야근 후엔 자극적인 음식을 찾았다. 소화가 안 된 채로 잠드는 날이 많았고, 피부 상태도 영 좋지 않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한 채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딱 일주일만, 고기 없이 살아보자.” 그 도전은 다이어트가 목적도, 환경운동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몸과 일상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은 일주일 후에는 '3주만 더 채식을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만족한 결과를 얻으니 한달을 채워보고 싶었다. 과연 고기를 한 달 동안 끊으면, 내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채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까? 변비는 해결될까, 아니면 더 심해질까?
이 글은 내가 채식을 결심하고, 장을 보고, 도시락을 싸고, 외식을 고민하고, 때로는 화장실에서 고통스러워하며, 1개월 동안 고기 없이 살아낸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겪고, 느끼고, 부딪히고, 깨달은 현실적인 채식 체험기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한 달은 분명히 내 몸과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채식을 고민 중이라면, 혹은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 경험이 당신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채식 중 외식은 진짜 어렵다. 메뉴판 앞에서 좌절한 날들
채식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외식의 어려움이었다. 회사 근처 식당, 친구들과의 약속, 부모님과의 외식 자리에서 나는 매번 메뉴판 앞에서 당황해야 했다. 된장찌개? 멸치 육수. 김치찌개? 돼지고기 기본. 냉면? 육수에 고명까지 고기. 샐러드? 닭가슴살 or 베이컨 기본. 비빔밥? 달걀후라이가 빠지지 않는다. '야채 많은 메뉴’를 골라도, 조리 과정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그냥 한 끼는 괜찮겠지” 하며 고기 고명을 걷어내기도 했지만, 점점 그런 타협이 내 결심을 흐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만들었다. '가능한 외식을 줄이고 도시락을 싸기', '채식(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을 미리 찾아보고 약속 장소를 제안하기' 회사 점심은 주 3회 도시락, 주 2회 외식으로 조절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채식(비건) 브런치 카페’, ‘두부 전문점’, ‘채식(비건)버거 매장’을 제안했다. 처음엔 “너 진짜 그걸 먹고 배가 차냐?”는 말을 들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너 그 맛집 또 가자고 하려는 거지?”라며 웃으며 따라와준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다. 냉면 육수를 따로 빼달라거나, 고명을 빼달라고 요청하면 종종 눈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나는 나의 선택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갔다. 외식은 채식 실천자에게 여전히 큰 장벽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 기준을 유연하게 지키는 연습은 내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줬다.
채식 장보기, 시간과 돈과 습관이 바뀌었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자주 가게 된 곳은 마트와 시장이었다. 이전에는 장보기가 귀찮고 반복적인 일이었지만, 채식 이후엔 식재료를 고르는 일이 오히려 하루를 살아내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 되었다. 고기를 뺀 식단을 구성하려면 채소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보다 복잡했다. 단백질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포만감은 어디서 오게 할 것인가? 그래서 처음 장을 볼 때 나는 손에 들린 바구니를 한참 들여다보며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예전엔 장을 볼 때 고기·과자·냉동식품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장바구니 구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구성했다.
기본 단백질 식재료: 단단한 두부 3모, 생 템페 2개, 병아리콩 500g, 렌틸콩 1kg, 두유 4팩
채소와 곡류: 현미, 귀리, 고구마, 감자, 당근, 브로콜리, 버섯류, 애호박, 양파, 양배추, 김
건강한 지방원: 아보카도, 들기름, 견과류 믹스, 올리브오일, 해바라기씨
양념/조미료: 비건 고추장, 천연 된장, 간장, 메이플시럽, 미림, 마늘가루, 바질, 커민, 카레가루
이렇게 1회 장을 보면, 비용은 약 6~7만 원 선. 고기와 가공식품을 사지 않으니 일단 단가는 올라가지만, 소비 패턴 자체가 줄어든 덕분에 결국 전체 식비는 감소했다. 불필요한 간식이나 외식을 안 하게 된 것도 컸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채소는 금방 시들고 버리기 쉬우므로 계획적인 소비가 필수라는 것이다.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냉장고를 열어 재료 재고를 체크했고, 일요일 아침에는 계획한 식단대로 필요한 것만 구매했다. 이렇게 하니 식재료 폐기율이 30% 이상 줄었다. 또한, 채식(비건) 밀프렙 루틴을 정착시키면서 반복 가능한 ‘도시락용 반찬 세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매주 한 번은 꼭 만드는 병아리콩 커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병아리콩 토마토 커리 – 3일치]
병아리콩 1컵 (전날 물에 불림 후 삶기)
양파 1개, 마늘 3쪽, 토마토 2개, 당근 1개
코코넛밀크 1컵, 커리 가루 2큰술, 소금, 후추
모두 볶아 끓인 후 밀폐용기에 소분. 현미밥 or 퀴노아와 함께 도시락 구성.
그 외에도
두부조림 → 식으면 질겨지므로 구운 두부 + 간장 마리네이드
고구마 → 찐 것보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것이 도시락에 적합
브로콜리 → 데쳐서 참기름 + 깨 + 소금 살짝 무쳐야 오래 보관 가능
이렇게 반복 가능한 패턴이 생기자, 장보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마트에서도 망설임이 줄었고, 식단 짜는 시간이 줄었다. 의외의 장점도 있었다. 이전에는 장을 보면 늘 과자와 음료, 냉동 간식이 하나씩 들어갔는데 채식을 하면서 과자나 단 음식에 대한 욕구 자체가 줄어들었다.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줄이자 자연스럽게 단맛에 대한 탐닉도 줄어들었고, 그만큼 군것질을 안 하게 됐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 있었다. 특히 주말에 밀프렙을 하지 못했을 때는 다음 주 내내 도시락이 부실해졌고, 결국 식사가 엉망이 되곤 했다. 그럴 땐 다시 급히 반조리 제품을 사거나 외식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저녁엔 어떤 일이 있어도 최소한 기본 3종 반찬은 꼭 준비하려고 했다. 한 달간의 채식 장보기 루틴은 단순한 식재료 구매를 넘어, 나의 생활습관과 소비 습관 전체를 점검하고 조정하는 과정이었다.
한 달 채식하니 변비, 감정, 삶까지 바뀌었다
내가 채식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만성 변비였다.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그것도 억지로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어야만 가능했던 그 불편한 리듬. 그런 생활이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느껴졌고, 심지어 그런 상태에 몸이 적응했다는 게 더 이상했다. 그래서 채식 1개월 도전의 가장 큰 기대는 ‘정말 변비가 나아질 수 있을까?’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3주 차를 넘긴 시점부터 장이 완전히 새롭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1일 1~2회의 규칙적인 배변, 화장실에 앉는 시간 3분 이내로 단축, 복부 팽만, 가스, 트림이 현저히 줄어듦, 속이 항상 가벼운 느낌이 유지됨. 이 변화는 단순히 물리적인 장 기능 개선에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가벼움, 식사 후의 피로감 감소, 오후 시간대 집중력 유지, 심지어 얼굴 붓기까지 달라졌다.
나는 하루 식단에 항상 식이섬유가 풍부한 재료를 넣으려 노력했다.
아침: 귀리죽 + 바나나 or 사과
점심: 퀴노아 & 병아리콩 샐러드 or 고구마 + 브로콜리 도시락
저녁: 된장버섯국 + 현미밥 + 구운 채소
이런 식단이 반복되자, 장이 ‘규칙’을 기억한 듯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변화도 찾아왔다. 바로 감정의 변화였다. 예전에는 식사 후 늘 무기력하고 졸렸고,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채식을 하면서 내 식사는 더 단순해졌고, 그 덕분에 감정도 훨씬 차분해졌다. 내 몸을 신경 쓰고, 식단을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내 하루를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훈련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내 자존감에도 영향을 줬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채식을 시작한다고 말했을 땐, “너는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하냐”, “하루 두 끼라도 먹어”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요즘 피부 좋아졌다”, “몸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식당에선 메뉴를 바꾸거나 요청할 때 눈치를 보던 내가,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이건 제 선택이에요. 불편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저를 지키는 방식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도전이 내게 남긴 건 ‘지속 가능한 변화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진짜 감각이었다. 처음엔 외식이 어렵고, 재료비가 부담되고, 요리가 서툴러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하지만 매일 하나씩 해내면서 ‘할 수 있다’는 감정이 축적됐다. 지금 나는 완벽한 비건(채식주의자)은 아니다. 가끔은 외식 자리에서 계란이나 치즈가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육류 없이도 충분히 맛있고 만족스러운 식사가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가능하면 식물성 식단을 유지하고, 스스로 요리를 해먹고, 음식에 대한 죄책감이나 무심함 대신 ‘내가 내 몸에 주는 선물’이라는 감각을 갖고 싶다.
한 달 동안 고기를 끊는 건 단지 메뉴에서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빼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바라보는 방식, 하루를 시작하는 태도,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혹시 지금 당신도, 식단을 바꾸고 싶지만 두렵거나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작은 변화 하나가, 당신의 몸뿐 아니라 삶 전체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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