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기술(Plant-based Tech)의 혁신' 대체 단백질에서 미래 식량까지
채식 기술이 가져온 식탁의 진화, 그 시작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채식은 더 이상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채식 기술(Plant-based Tech)’이라는 개념이 식품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미래 식량 시스템을 다시 그리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식물성 원료를 과학적으로 가공해 동물성 식품의 맛, 질감, 영양을 유사하게 구현하거나, 아예 새로운 식품의 구조를 제안하는 등 혁신적인 미래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채식은 대체로 자연 재료의 조합이나 조리 방식에 의존해왔다면, 채식 기술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분자 수준에서의 모사와 재구성을 통해 식물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채식 기술은 탄소 절감, 물 절약, 토지 이용 효율 개선이라는 환경적 효과는 물론이고, 향후 10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지속 가능한 식량 전략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인공 고기, 식물성 해산물, 식물 기반 유제품 등이 실제 시장에서 판매되며 소비자의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중요해보인다. 이는 식단 선택의 자유를 넓히면서도, 동물 복지와 건강, 환경 등 다양한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채식은 기술을 만나면서 윤리적 실천에서 과학적 대안으로 진화했고, 이제는 미래 식량 체계의 표준을 설계하는 단계까지 접어들고 있다.
채식 기술이 열어가는 대체 단백질의 진보
채식 기술 중에서도 가장 급속히 진보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대체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인체 세포 구성과 면역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소이자, 전 세계 식량 안보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자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동물성 단백질 생산은 방대한 토지와 물, 곡물, 에너지를 소비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에서도 농축산업 전체의 약 14.5%를 차지할 정도로 기후 위기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채식 기술 기반의 ‘대체 단백질’이다.
오늘날의 대체 단백질은 단순한 콩이나 두부 중심의 식물 단백질을 넘어, 고기 맛과 식감을 과학적으로 구현하는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로는 식물 기반 단백질(plant-based protein), 곰팡이 유래 단백질(mycoprotein), 해조류 기반 단백질(algae protein), 미생물 발효 기반 단백질(precision fermentation)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동물세포 없이 생산하는 ‘세포 배양 단백질(cultivated protein)’도 식물성과 하이브리드 형태로 연구가 확장되는 중이다. 이처럼 원천 소재의 다양성과 생산 공정의 정밀도는 과거의 채식식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식품 혁신을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는 대두 뿌리에서 추출한 헤모글로빈 유사 분자 ‘헤미(Heme)’를 활용해 육류 특유의 철분 풍미와 핏빛 육즙을 구현했고,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완두콩, 쌀, 병아리콩 등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을 조합해 고기의 탄력과 씹는 맛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품들은 미국 내 대형 슈퍼마켓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체인(버거킹, KFC 등)에도 납품되어, 전 세계적으로 채식 선택지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채식 기술은 활발하게 발전 중이다. 지구인컴퍼니는 식물 유래 단백질로 만든 비건 고기 ‘언리미트’를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섰고, 동원F&B는 미생물 발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대체 계란 단백질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또한 곤충 단백질을 식물성과 결합해 하이브리드 대체 단백질로 발전시키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농촌진흥청과 국내 푸드테크 스타트업들이 협력하여, 한국 식문화에 맞는 차세대 단백질 식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자원 효율성 면에서도 기존 축산 시스템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식물성 기반 대체 단백질은 일반 육류 대비 평균적으로 90% 이상의 물과 토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량도 80% 이상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동시에 고단백, 저지방, 무콜레스테롤 등 영양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아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층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세계은행과 UN FAO(세계식량농업기구)는 대체 단백질이 2035년까지 글로벌 단백질 시장의 최소 11~22%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이는 기존 축산 중심 식량 체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각국 정부와 투자기관들도 ESG 관점에서 대체 단백질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 및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이는 향후 글로벌 식량 체계의 혁신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채식 기술이 바꾸는 식량 시스템의 구조
채식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새로운 식재료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 식량 시스템의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혁신의 흐름이다. 지금까지의 글로벌 식량 시스템은 ‘사료 곡물 재배 → 가축 사육 → 도축 → 가공·유통’이라는 복잡하고 자원 집약적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 토지, 에너지, 사료 곡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며, 전체 곡물의 약 33%가 가축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다. 축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하며, 사육지와 사료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벌목과 생물 다양성 파괴도 동반되고 있다.
반면, 채식 기술은 이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구조를 최소화하거나 완전히 우회한다. 예를 들어, 정밀 발효 기술(Precision Fermentation)은 특정 미생물에 유전자를 삽입해 원하는 단백질 성분을 직접 생성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우유의 유청 단백질, 계란 흰자의 알부민, 동물성 치즈의 카세인 등을 동물 없이도 생산할 수 있으며, 영양과 맛, 기능성까지 정교하게 구현된다. ‘퍼펙트 데이(Perfect Day)’는 이러한 기술로 동물 없이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에브리컴퍼니(Every Co.)’, ‘더에잇컴퍼니’ 등이 해당 기술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또한 3D 푸드 프린팅 기술은 사용자의 영양 상태나 알레르기, 식단 선호도에 맞춰 맞춤형 식물성 식품을 제작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는 병원, 학교, 요양시설과 같은 공공 식사 시스템에도 적용 가능해, 향후 공공복지와 식량 기술이 결합하는 접점을 형성할 수 있다. 도시의 유휴 공간에서 배양육과 식물성 단백질을 소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마이크로 프로덕션’ 개념도 점차 현실화되며, 식량 생산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화되는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식량 생산 방식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정책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각국 정부는 채식 기술 기반 식품을 식량 안보 전략의 한 축으로 인식하며, 농업 보조금 개편, ESG 식품 기술 펀드 조성, 대체 식품의 공공 급식 적용 확대 등을 통해 시스템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예컨대 싱가포르는 30년까지 전체 식량 자급률을 30%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30×30 정책’의 일환으로 식물성·세포 배양 기반 기술에 집중 투자 중이며, 유럽연합은 ‘팜 투 포크(Farm to Fork)’ 전략에 따라 채식 기반의 혁신 식품을 녹색 전환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채식 기술은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모든 과정을 재설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생산의 자립성, 소비의 건강성,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구조적 전환을 이끌고 있다. 채식 기술은 더 이상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기후·자원·인구·도시화 문제를 풀기 위한 ‘시스템 해킹’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기술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채식 기술이 만드는 미래, 그 너머를 상상하다
채식 기술은 더 이상 식품 기술의 한 영역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 기술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과 교육, 경제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서는 대체 단백질의 영양적 안정성, 제조 공정의 탄소 감축 효과, 소비자 기호 반영 알고리즘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전통적인 식품산업이 가지고 있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예컨대 미국 UC버클리와 MIT, 네덜란드 바헤닝겐 대학 등은 식물 기반 대체 식품을 중심으로 한 ‘푸드테크 전공’을 개설했고, 국내에서도 농식품 기술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식물성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채식 기술은 일자리를 만드는 산업적 기반이자, 창업과 교육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 ‘비욘드미트’나 ‘임파서블푸드’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뿐 아니라, ‘잇저스트(Just Eat)’는 배양 계란 기반의 무항생제 에그, ‘넥스트미트’는 일본식 식물성 육수로 채식 라멘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구인컴퍼니도 식물성 간편식, 간식류를 중심으로 아시아 채식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윤리적 유통 전문가, 지속가능 공급망 관리직, AI기반 레시피 개발자 등은 모두 새로운 채식 기술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앞으로 이 산업군의 폭발적 성장이 기대된다.
더 나아가 채식 기술은 기후 취약 지역에 현실적인 식량 자립 방안을 제공한다. 고온·건조에 강한 작물 기반 단백질 기술, 지역 재배에 최적화된 재생 농법, 태양광·빗물 이용 수경재배는 탄소중립 목표와 기후 적응형 농업을 동시에 실현한다. 특히 국제개발 NGO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채식 기반 기술을 기아 문제 해결의 전략적 수단으로 도입하고 있다. 기술은 전 지구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현은 결국 각 지역의 토양과 손에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채식 기술은 글로벌과 로컬, 첨단과 생태, 산업과 윤리를 연결하는 매개이자 다리인 셈이다.
결국 채식 기술은 단지 ‘먹는 것’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재설계하는 거대한 전환의 기술이다. 하루 한 끼의 채식 선택이 내 건강은 물론 지구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농부의 자립을 돕고,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남기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이제 과학적, 사회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의 식사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기후 행동’이며 ‘윤리적 선택’이자 ‘기술적 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채식 기술이 지금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도 지금, 그 변화의 출발점에 함께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