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기후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불평등과 식량정책의 교차점
기후 정의를 위한 첫걸음이 되는 채식
기후 변화는 단순히 지구의 온도가 오르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정의의 문제’로 이어진다. 부유한 지역일수록 육류 소비량이 높고, 자원이 풍부한 반면 취약한 지역은 가뭄과 기근, 식량 불안에 시달린다. 농업용수와 토지 사용량이 과도한 축산업이 세계 식량 생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혜택은 일부에만 돌아간다. 특히 글로벌 남반구의 농민과 노동자, 소수자 커뮤니티는 토지 강탈, 물 부족, 염분 침입, 식량 가격 폭등의 직접적 피해를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채식이 단순한 개인의 식습관을 넘어 어떻게 기후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채식은 고탄소·고자원 먹거리에서 벗어나, 자원을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하게 재분배할 수 있는 식량 정의의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채식이 연결하는 식량 불평등과 기후 정책
기후의 정의는 단순한 탄소 배출 감축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가 기후 위기에 얼마나 더 취약한가를 묻는 윤리적 이슈다. 현재의 세계 식량 시스템은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곡물 생산의 약 33%는 인간이 아닌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이는 생산량의 낭비일 뿐 아니라, 곡물 가격을 불필요하게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저소득 국가는 식량을 비싼 값에 수입해야 하며, 기후 재해로 농업 기반이 흔들릴 경우 치명적인 식량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2022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곡물 위기와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국가들의 식량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세계은행과 FAO가 공동으로 발표한 2025년 CoAHD(Climate and Agricultural Hunger Data)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약 35%는 ‘가격이 감당 가능한 건강한 식단’을 꾸릴 수 없는 상태다. 이 중 70% 이상이 농촌 지역이나 기후 취약지대에 집중돼 있으며, 기후 변화에 따른 가뭄·홍수·토지 황폐화는 이들을 더욱 더 사각지대로 밀어넣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점은, 식량을 재배하는 나라일수록 자국민의 식량 접근성이 더 낮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부분의 경작지가 수출용 사료 작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이익은 다국적 축산기업과 대규모 유통업체가 가져가게 된다.
이와 같은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채식 식단은 중요한 구조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료 작물 중심의 농업 정책을 식용 작물 중심으로 전환하고, 공공영역에서 채식 기반 급식을 도입함으로써 자국민의 식량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는 일부 공립학교에서 주 1회 채식 급식을 도입한 후, 급식비용은 평균 27% 절감되었으며, 지역 농민들과의 직거래로 식자재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도 개선되었다. 채식은 단순히 ‘고기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이는 식량의 생산과 분배 방식을 재구성하고, 자원이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도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된다. 정책이 이를 뒷받침할 때, 채식은 곧 식량 정의이자 기후 정의의 실천이 된다.
채식이 만들어내는 건강·환경·정의의 삼중 효과
채식 식단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식단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건강, 환경, 사회 정의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통합적 전략이다. 먼저 기후 영향 측면에서 보면, 미국 스탠퍼드대의 2023년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전 국민이 소고기 소비를 90% 줄이고 가금류, 유제품 등 다른 동물성 식품 소비도 절반 이하로 낮출 경우, 2030년까지 약 24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미국 전체 연간 배출량의 35%에 해당하며, 단일 식습관 조정만으로도 탄소세, 배출권 거래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전환은 환경 보호를 넘어 국가 재정과 복지 재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동물성 식품의 생산에는 육류 가공, 물류, 냉장 저장, 식품 폐기물 관리 등 막대한 시스템 비용이 따르며, 이를 줄이면 공공 예산에서 수조 원 단위의 지출 절감이 가능하다. 이 절약된 재원은 저소득층 식품 보조금, 학교 급식 개선, 농촌 지역의 지속가능한 농업 투자 등으로 재투자될 수 있다.
더불어 채식 식단은 건강 형평성 확보에서도 중요한 수단이 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동물성 중심 식단이 저소득층의 비만, 고혈압, 제2형 당뇨병 발병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식물 기반 식단은 체내 염증 수치, 혈당 변동성,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정화시키고, 식이섬유 섭취를 늘려 장 건강과 심혈관 건강에도 유익하다. 이러한 생리학적 이점은 공공의료비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의료 인프라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의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채식은 기후 위기와 건강 위기가 중첩되는 지점, 즉 도시의 저소득 주거 지역이나 기후 취약 농촌 지역에서 복지정책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채소 중심의 지역 커뮤니티 급식, 도시농업과 결합된 채식 푸드뱅크 등은 식량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영양 불균형을 해결하는 현장형 해법이 된다. 채식은 이제 개인의 건강한 선택을 넘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한 구체적 수단이자, 구조적 불평등을 교정할 수 있는 실천적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채식 실천을 통한 기후 정의의 확장
우리가 오늘 채식 한 끼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식단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 정의라는 전 지구적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실천이다. 기후 정의는 단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과학적 목표를 넘어, 기후 위기 속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 취약 계층과 국가를 먼저 고려하는 ‘공정한 전환’의 철학이다. 세계 각국의 환경사회학자들은 채식이 그 출발점이자 가속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교육기관과 공공기관, 직장에서의 채식 기반 급식 도입은 사회 전체의 감수성과 인식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기후 급식’으로 불리는 유럽의 공립학교 채식 정책은, 아동과 청소년이 자연스럽게 기후에 따른 불평등과 식량 분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있고, 그 경험은 성인이 되어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교육청과 일부 지자체는 공공급식에 비건 식단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식생활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치적 움직임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채식의 실천이 확산될수록, 시민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공식량에 관한 정책 개편, 축산 보조금의 재구조화, 식물성 단백질 산업에 대한 지원과 확대 등 보다 구체적이며,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요구는 기후 정의 담론을 이념적 논의에서 정책적 실행으로 이끌어내는 실질적인 동력이 된다. 2025년 독일의 ‘비건 기후 식량법안’처럼, 채식은 이제 정치, 복지, 환경을 아우르는 핵심 아젠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이 결코 먼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채식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의 식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을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그 질문 앞에 선다. 오늘 한 끼의 채식이 지구 반대편에서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단지 '무력한 개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기후 정의는 특별한 이들의 선언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평범하게 내리는 일상 중 선택 속에 있기 때문이다. 채식은 그 선택을 가장 아름답고 지속 가능한 언어로 말해주는 실천 방법이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하다. 오늘 내가 고른 식재료, 내가 만든 한 끼의 식사, 그 모든 것이 지구 반대편 아이의 웃음이 되고, 숲속 야생동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채식은 고립된 실천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하는 정의로운 길이다. 세상이 너무 거대하고 변화는 느릴지라도, 우리는 매일 식탁 위에서 작지만 강력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을 오늘, 지금, 함께 내딛어 보았으면 좋겠다. 채식은 기후 정의를 향한 가장 부드럽고도 단단한 대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