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채식과 토지 사용의 관계: 곡물, 가축, 그리고 지속가능한 식량 시스템의 재편

llyn1815 2025. 7. 24. 12:53

고기를 위한 땅? 채식이 바꾸는 토지의 쓰임

우리는 흔히 식탁에서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지만, 그 음식이 차지한 ‘땅’에 대해서는 쉽게 잊는다. 실제로 지구의 육지 중 약 38%는 농업용도로 쓰이고 있으며, 이 중 무려 77%가 가축을 위한 사료 재배와 방목지로 쓰인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위기감을 준다. 반면 우리가 식품으로 섭취하는 칼로리의 83%는 단지 23%의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식물성 식품에서 비롯된다. 이 말은 곧, ‘많은 땅을 쓰고도 적은 양의 식량만 생산하는 구조’가 현재 축산업을 중심으로 한 식량 시스템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비효율적인 땅 사용을 계속해야 할까?

이 질문의 중심에는 채식과 육식의 구조적 차이가 있다. 소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방목지뿐 아니라 옥수수, 대두 같은 곡물을 기르고, 이 곡물을 운반하고 저장하고 다시 먹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모든 단계가 ‘토지’를 기반으로 한다. 채식은 이런 복잡한 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인간이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토지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다. 1헥타르의 땅에서 생산된 식량이 사람에게 돌아가는 비율을 보면, 채식 식단은 동일한 면적에서 육류 기반 식단보다 2~3배 이상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 효율, 지구 자원 활용의 관점에서 채식은 분명히 더 나은 해답이 된다.

채식과 곡물, 가축의 토지 사용 관계 분석

 

왜 채식이 가축의 밥이 되어야 하는가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곡물의 약 33%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특히 대두, 옥수수, 보리와 같은 주요 작물은 소, 돼지, 닭 등의 성장과 살찌움을 위해 대량 투입된다. 그 결과, 인간이 섭취 가능한 귀중한 식량 자원이 동물의 체중 증가와 육류 생산을 위한 중간 단계에서 소모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자원의 비효율을 넘어, 전 지구적인 식량 불균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약 25kg의 곡물이 필요하며, 같은 곡물로는 성인 8~10명이 하루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낭비’의 문제를 넘어서, '자원 분배의 정의'라는 윤리적 질문까지 동반하게 만든다.

곡물이 가축의 사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에너지 전환율 측면에서도 매우 낮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에게 공급된 식물성 에너지 중 실제로 인간이 섭취 가능한 육류로 전환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10% 미만이다. 즉, 90% 이상의 열량은 사육 과정에서 손실되는 셈이다. 이는 에너지, 자원, 물, 토지 모두를 포함한 총체적 낭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는 곡물 수입 비용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며, 선진국의 육류 소비가 이 같은 곡물 수요를 견인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채식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식생활 구조다. 채식 식단은 곡물을 가축을 거치지 않고 사람이 직접 섭취함으로써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자원의 효율을 높인다. 이 방식은 기후 위기와 물 부족, 경작지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서 식량 자립도를 높이는 해법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식물성 식품은 생산 과정에서 투입되는 농약, 화학 비료, 수자원 사용량이 적기 때문에 토양 오염과 지하수 고갈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UNEP(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식물성 단백질의 토지·물 사용 효율은 육류 대비 평균 11~20배 더 높다. 예컨대, 병아리콩과 렌틸콩은 동일한 단백질량을 제공하면서도 육류보다 훨씬 적은 경작지로 재배 가능하다.

또한 현재 가축 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일부만 재배 방식과 유통 시스템을 개선해 인간 식량으로 전환하더라도, 극심한 기아와 영양실조를 겪는 8억 이상의 인구에게 충분한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음식 선택’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식량 정의(food justice)와 연결된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채식은 사료 중심의 곡물 소비 구조를 재설정함으로써 곡물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물과 토지, 에너지의 총체적 부담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왜 채식이 가축의 밥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왜 이렇게 낭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실현 가능한 해법은 바로 채식적 식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채식을 위한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 해법

지속가능한 농업이란 단지 유기농이나 무농약 방식 같은 ‘친환경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농업이 인류 전체의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환경을 회복시키고, 지역 공동체의 경제를 살리며, 미래 세대까지도 안정적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시스템적 관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현재의 육류 중심 농업은 회복이 아닌 고갈을 부르는 구조다. 실제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 삼림 파괴의 70% 이상이 가축 방목과 사료 경작지 확보 때문이라고 보고한다. 특히 아마존 열대우림의 경우, 2023년 기준 80% 이상의 삼림이 축산 목적의 사료 재배와 소 사육을 위해 벌채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한 토양 침식, 생물다양성 상실, 기후탄력성 저하는 인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채식 기반 식량 시스템은 새로운 농업 모델의 대안이 되고 있다. 채식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농사를 짓고, 어떤 식으로 유통되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까지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 전환의 촉매가 된다. 예컨대, 재생 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은 토양의 탄소 흡수 능력을 강화하며, 채식 위주의 작물 순환 재배는 농약과 비료 사용을 줄이고 병충해 내성을 높일 수 있다. 또 도심 속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도시농업이나 수직형 농장은 채식 위주의 소규모 고효율 식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물류비용 감소, 저장·운송 과정에서의 에너지 절감 등 부가적인 환경 효과도 수반한다.

특히 이러한 지속가능한 농업 해법은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다국적 기업 중심의 축산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가 채식 중심의 자급 식량 체계를 갖춘다면, 기후 위기나 국제 곡물 시장의 충격에도 더 강한 회복력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과 덴마크는 채식 식단을 기반으로 한 ‘지역농식품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 학교 급식, 공공 병원, 군대 식사 등에 채식 중심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을 동시에 낮추는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결국 채식은 생산자, 소비자, 정책 결정자 모두가 연결된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전략적 식생활’이다. 농업은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며, 채식은 이 구조의 전환점이다. ‘소비’가 ‘생산’을 바꾸고, ‘식탁’이 ‘토양’을 회복시킨다. 채식은 그 순환의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단지 채식주의자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농업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

 

환경을 위한, 채식을 위한 토지 사용 정의의 재설정

결국 ‘채식’은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토지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질문이다. 21세기 식량 시스템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바로 “한정된 땅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과 생명이 나누어 쓸 수 있는가”이다. 채식은 이 질문에 가장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더 적은 땅으로 더 많은 식량을, 더 적은 자원으로 더 큰 생태적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전 세계 경작지의 약 77%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에 사용되고 있지만, 그 식량 자원이 제공하는 단백질은 전체의 37%, 칼로리는 고작 18%에 불과하다. 반면, 식물성 식품은 훨씬 적은 토지로 더 많은 영양을 생산할 수 있으며, 특히 렌틸콩, 완두콩, 두류 기반 식단은 단백질 단위당 토지 사용량이 소고기보다 최대 100배 적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자료는 ‘식물성 전환’이 단순히 윤리나 건강을 넘어서, 자원의 정의로운 재분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단지 환경단체나 채식 커뮤니티의 이슈에 머물지 않는다. 2024년 기준, 유럽연합은 ‘Farm to Fork’ 전략을 통해 토지 효율성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한 채식 중심 농업 전환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UN FAO는 지속가능한 식단 가이드라인에 ‘식물 기반 전환’을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한국 역시 농촌진흥청에서 2025년까지 ‘식물성 중심 작물 다변화 연구개발 로드맵’을 수립하고, 토지 사용 재편을 위한 정책 시범사업을 일부 지역에서 추진 중이다.

물론 식습관을 단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점진적인 채식 실천,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지구를 위한 식사’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토지는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 내가 먹는 한 끼가 곧 아마존의 나무 한 그루를 지키고, 아프리카의 아이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지켜주는 선택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먹는 방식’을 통해 이 지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다. 토지는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식탁을 채우는지에 따라, 토지는 스스로를 되살릴지, 혹은 또 다른 고갈의 길로 갈지를 결정짓는다. 채식은 우리의 작은 식사 선택으로 시작해 토지와 생태계를 회복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을 바로 오늘, 식물성 한 끼로 내딛어보자. 작지만 가장 확실한 지구 회복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