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부자들의 식단이다?’라는 오해 속에서 시작된 실험
내가 채식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그거 돈 많이 들지 않아?”, “마트 가보면 채식 재료가 더 비싸던데?” 그 반응은 너무 익숙했고, 사실 나 역시도 마음 한 켠에 그런 걱정을 안고 있었다. ‘채식은 가성비가 안 좋다’는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깊이 박혀 있다. 비건 치즈, 코코넛 오일, 아보카도, 수입 퀴노아, 무첨가 오트밀바 같은 제품들을 보면 채식 식단이 다소 고급 식문화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채식이 ‘비싼 식단’일까? 나는 이 오해에 직접 답을 내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실험은 단순했다. 한 달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며, 정확하게 식비를 기록하고 비교해보는 것. 기존에 육식을 포함하던 식단과 비교했을 때 정말로 채식이 더 비싼지, 아니면 단지 소비 습관의 차이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 글은 그 실험의 기록이다. 채식을 시작하며 느낀 실제 비용 변화, 장보는 방식, 그리고 생각보다 절약이 가능했던 포인트까지 한 끼 한 끼 계산하며 얻은 실질적인 후기를 담았다.
한 달간 채식 식단으로 생활해보며 알게 된 현실적인 식비
처음 장을 보러 갔을 때 나는 솔직히 멘붕 상태였다. 육류 코너를 그냥 지나치는 건 괜찮았지만, 정작 뭘 사야 할지 막막했다. 냉동만두 대신 뭘 먹어야 하지? 단백질은 두부로만 채워질까? 무작정 ‘채소 많이 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채소가 어떤 요리에 어울리는지도 몰랐고, 막상 다 사서 냉장고에 넣고 나니 뭘 만들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주엔 나물이랑 고구마만 반복해서 먹다가 입맛을 완전히 잃었고, 외식 유혹을 참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왜 시작했지?” 싶었다. 나는 분명 돈을 아끼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는데, 계획 없는 채식은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영양과 의욕을 함께 까먹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먼저 기존의 주간 장보기 리스트를 정리했다. 이전에는 마트에서 정육코너를 거쳐 우유, 달걀, 닭가슴살, 냉동만두, 햄 등을 샀다면, 이제는 그 자리에 두부, 병아리콩, 렌틸콩, 현미, 제철 채소, 고구마, 견과류 등이 들어왔다. 처음엔 ‘과연 이게 배부를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막상 식단을 구성하고 나니 오히려 종류가 더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현미밥 + 구운 두부 + 된장국 + 김치 + 나물/ 렌틸콩 샐러드 + 고구마 + 삶은 브로콜리/ 채소 커리 + 귀리밥 + 오이무침. 이런 구성은 영양도 충분하고, 포만감도 좋았다. 그리고 실제 장보기를 계산해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기존 식단에서는 주간 식비: 약 65,000원/ 주요 비용: 육류(28,000원), 유제품(12,000원), 간식류(15,000원), 기타(10,000원). 채식 식단에서는 주간 식비: 약 48,000원/ 주요 비용: 채소류(20,000원), 두부·콩류(12,000원), 견과류(8,000원), 기타(8,000원). 물론 처음 몇 주는 새로운 식재료를 구비하느라 약간의 지출이 더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니 채식 식단이 오히려 평균 20~25%가량 저렴했다. 비건 가공식품이나 수입품을 제외하고, 제철 식재료와 곡물 위주로 구성하면 가성비는 충분히 챙길 수 있다.
채식이 가성비 식단이 될 수 있었던 3가지 핵심 전략
실속 채식은 물론 가성비가 좋다. 하지만 가끔은 솔직히 짜증이 났다. 두부는 금방 무르고, 채소는 사흘만 지나도 숨이 죽는다. 반찬이 매번 비슷해지고, 요리할 때마다 손질이 많고, 조미료 없이 감칠맛을 내는 건 아직도 어렵다. 어떤 날은 다 귀찮아서 고구마만 삶아 먹고 하루를 버텼고, 어떤 날은 그냥 치킨 시켜먹을까 10분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건 단지 식단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타협 사이에서 계속 줄다리기하는 감정의 문제였다. 외식도 쉽지 않다. 식당에서 메뉴 고르기 어렵고, 비건 옵션이 없을 땐 ‘아예 안 먹거나, 원칙을 깨거나’ 두 선택 사이에서 매번 고민해야 했다. 실속 채식은 가능하지만, 절대 쉽진 않다. 그 불편함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실험에서 내가 특히 신경 쓴 건 단순히 ‘싸게 먹는 것’이 아니라, ‘잘 먹으면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효과적이었던 전략은 다음 세 가지였다.
첫번째, 제철 채소와 곡물로 구성
마트에 가면 요즘 제일 싼 채소가 무엇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날그날 가장 신선하고 저렴한 채소를 기준으로 한 주 식단을 미리 설계했다. 예를 들어, 겨울엔 무·배추·시금치, 여름엔 오이·가지·토마토 같은 식이다. 또한 쌀 대신 현미, 귀리, 보리, 퀴노아를 번갈아가며 섞어 먹으니 식감과 영양 균형도 좋아지고, 탄수화물 중심에서 벗어나 식단이 다양화되었다.
두번째, 가공식품보다 원재료 중심 장보기
비건 소시지, 비건 치즈 같은 제품은 물론 매력적이지만, 단가가 높고 양이 적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제품은 특식이나 간식용으로만 사용하고, 기본 식단은 두부, 콩류, 고구마, 단호박, 버섯 등 원재료 중심으로 구성했다. 이 전략은 영양 밀도는 높이면서 가격은 낮추는 핵심 팁이 되었다.
세번째, 식재료 활용도를 높인 레시피 순환
예를 들어, 한 번 구입한 브로콜리를 1일 차엔 데쳐서 샐러드, 2일 차엔 두부 볶음에 넣고, 3일 차엔 된장국에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 재료를 2~3일에 걸쳐 순환하며 사용하면, 남김 없이 알차게 활용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재구매도 줄어들었다. 이 세 가지 전략만 적용해도, 채식은 충분히 ‘가성비 있는 식단’으로 전환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채식과 육식 식단을 비교했을 때 느낀 의외의 차이들
채식을 하면 무조건 배고프고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단백질 섭취량도 일정 수준 이상 유지 가능했다. 특히 병아리콩, 두부, 템페, 렌틸콩, 땅콩 등은 포만감이 좋고 흡수율도 높다. 그리고 가장 크게 느낀 건 식후 속이 편안해졌다는 점이다. 육식 위주의 식사 후에는 더부룩함이나 졸림이 자주 있었지만, 채식을 시작한 뒤에는 오히려 식사 후 컨디션이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또한 냉장고 관리가 훨씬 수월해졌고, 음식물 쓰레기 양도 줄었다. 육류는 보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고, 상하면 버리는 일이 잦았지만 채소와 곡물은 냉장·냉동 활용이 유연해서 낭비가 적었다. 그리고 비용뿐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이 높아졌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에 좋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식사 자체를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줬다.
채식은 비싸지 않다, 선택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 달간 채식 식단을 유지하고 나서,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채식은 결코 비싸지 않다. 물론 비싼 채식도 존재한다. 수입 식재료, 브랜드 비건 가공식품 중심의 소비라면 식비가 확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의 식단, 제철 채소, 곡물, 두부, 김치, 국산 콩류 등으로 구성된 식단이 얼마나 가성비 있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채식은 비싸지 않아?”라고 물으면,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결국 기준이 다를 뿐이에요.” 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식재료를 고르고, 어떤 과정을 감수할 수 있으며,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성비 채식의 핵심이다. 때로는 나도 편의점 김밥에 손이 가고, 매일 반찬을 직접 만들 자신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흐름이 다 무너지는 건 아니다. 식단은 완벽함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채식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면, 딱 한 끼만이라도 직접 계산해보길 권한다. 의외로 저렴하고, 생각보다 만족스러울 수 있다. 채식은 선택이고, 그 선택을 현실로 바꾸는 건 오롯이 당신의 기준과 창의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냉장고 속 두부 한 모, 시장에서 산 채소 한 단, 밥을 지어 한 끼를 차리는 그 단순한 행동 속에도 충분히 나만의 철학과 방향이 담길 수 있다. 작은 식탁이 때론 가장 강한 메시지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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